예수님이 받은 시험의 영적 의미

마태복음 4장 1-11절『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사탄과 예수는 세상적으로 말을 하면, 검사와 변호사 역할이다. 하나님은 대통령으로 비유할 수 있다. 법에 따라, 대통령이 죄인들을 기소하는 역할을 검사제도를 만들어서 권능을 주었다. 온 세상은 죄인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감옥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대통령이 감옥에서 회개하는 자에게 사면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 사면의 권능을 변호사 역할을 하게 될 그의 아들에게 맡겼다. 그런데, 검사는 당연히 자신의 역할에 도전하는 이 변호사가 탐탉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정말 권능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게도 하고 해서, 앞으로 수없이 많이 만날 것인데, 변호사가 검사에게 자신의 직책을 소개하고, 검사는 변호사를 시험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검사와 변호사가 대면하게 해 주는 역할을 대통령 비서실장이 맡았다. 변호사는 죄인들을 사면하기 위한 대책을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성령은 대통령 비서실장을 상징한다.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여 주리다 라는 말은 변호사가 회개하는 죄인들을 발굴해야 하는데, 많은 준비를 했다는 말이다. 변호사는 목적을 달성하는데, 배가 고픈 것이다.

검사는 변호사에게 세가지의 질문을 하면서, 서로의 팽팽한 기 싸움은 진행되었다.

 

첫번째 질문은 당신이 죄를 사면할 권능을 가졌다고 하는데, 여기 죄인 한 사람을 데리고 왔으니, 어디 이 자리에서 사면해 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변호사는 아무 죄인이나 사면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죄인을 사면한다는 말로 대답했다. 회개하는 마음은 자기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한 죄를 깨닫고, 그 분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그러나, 검사는 변호사의 말에 응수하지 못한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이 돌들은 율법 아래 있는 죄인들을 의미한다. 떡덩이는 생명이 있는 떡으로서 죄를 벗고 의인이 된 자를 의미한다. 즉 죄인을 사면해서 의인으로 되도록 해 보라는 것이다. 이게 예수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식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것이다. 변호사인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을 먹는 자가 의인이 되는 것임을 말한다. 

 

(하늘의 생명)을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말씀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이 때 말씀은 구약성경일 것이다모든 죄인은 동물을 죽여서 희생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이 희생제사를 통해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말이다말씀 속에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두번째 질문이다. 당신이 죄인들을 사면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만일 당신이 죄를 범하면 당신 스스로 사면을 하게 할 것인가 묘한 질문을 한다. 이 질문은 변호사도 세상의 법 아래 있는 자라는 것을 은근히 유도한 질문이다. 대통령은 변호사를 세상이라는 감옥에 파견할 때, 세상법에 적용받지 않도록 정해놓았다. 그런데, 변호사가 만일 검사의 유도 질문에 넘어가면, 법 집행이 가능해지며, 언제라도 검사가 변호사라도 법의 규정을 어기면, 기소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변호사는 검사의 유도 질문에 대해서 대통령의 권한에 대해서 시험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을 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검사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사람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는 행위는 자살행위이다. 율법에서 금하는 것이다. 예수가 율법을 어기게 되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까 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탄은 예수도 철저히 율법을 지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식의 유도 질문인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수동적 순종을 말하고 있다. 사탄의 질문에 넘어간 자들이다. 능동적 순종이란 그리스도가 영생을 얻게 할 조건으로 죄인을 위하여 율법을 준수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며, 수동적 순종이란 그리스도가 죄의 형벌을 지불하여 그의 모든 백성의 부채를 갚음으로서 수난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스스로 고난과 죽음에 자신을 종속시킨 것은 그의 능동적 순종의 일부이고, 그리스도께서 율법에 종속되어 살았으며 종의 형상으로 활동하셨다는 것은 수동적 순종의 일부라는 것이다. 능동적 순종의 의미 속에 내포하고 있는 사상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역과 예수님의 율법적 순종이 합해져야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정말 이단적인 발언들이다. 예수님은 율법 위에 계신 분이었지만,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율법에 따라 죽으셨다.

 

세번째 질문이다. 대통령께서 죄인들을 기소할 수 있도록 모든 권한을 나에게 주었는데, 당신이 대통령의 사면권을 가지고 있으면, 나의 권한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은가, 당신이 대통령이나 다를 바가 없으므로,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차라리 기소권을 당신에게 다 넘겨줄 테니 당신이 북치고 장구치고 하세요 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변호사는 내가 비록 사면권을 부여받았지만, 대통령은 절차를 중요시하므로, 당신의 권한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죄인을 풀어주어서 은혜를 베풀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큰 결단을 내린 것이니, 대통령이 지시한 대로 당신이 맡은 바를 열심히 잘 하시요 라고 응수했다. 그러자 검사는 아무 말을 할 수 없으므로 그 자리를 떠고 말았다. 변호사도 대통령실 행정관의 안내를 받고, 그 자리를 떠나게 된 이야기이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이 성경 귀절은 마태복음 4장 8-10절의 말씀이다.

 

그런데, 누가복음 4장 5-8절을 보면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사탄이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라고 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탄에게 죄인을 기소하는 기소권을 넘겨준 것을 의미한다.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에서 절하다라는 헬라어는 프로스쿠네세스(προσκυνήσς 기본형은 프로스쿠네오) 라는 단어이다. 아첨하다, 부복하다, 예를 표하다, 예배하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여기에서는 절하다 라는 의미보다, 미안하다는 의미로 예를 표하는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하나님과 세상을 겸히 섬기는가에 대한 시험이다. 이는 영적 간음에 해당된다.

 

오늘날 교회에서 영적 전쟁을 말하면서 거의 대부분 사탄과의 전쟁이라고 말들을 한다. 죄인은 감옥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당연히 검사와 다투게 된다. 죄인이 검사를 바라볼 때는 마치 저승사자처럼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율법에서 벗어나 하늘로부터 태어난 자라면, 예수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사탄(검사)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의 적은 다름 아닌 육적 자아인 것이다. 영적 자아가 육적 자아와 싸워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일곱 족속과 싸우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이에 해당된다. 만일 육적 자아도 좋고 영적 자아도 좋다고 생각하면, 하나님도 좋고 우상도 좋은 영적 간음을 하는 모양이다. 비진리에 속지 말고 진리에 서야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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